[한겨레] 분노 조절 ‘전측 대상회’ 활성화 평상시 일반인보다 쉽게 ‘발끈’ 유머·기쁨 등 긍정정서엔 둔감
한 연구에 따르면 알코올 중독자들은 일주일에 평균 4.9회의 분노를 느낀다. 이들 가운데는 분노를 삭이려 술을 마신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과음 뒤 우울한 감정에 시달려본 경험을 토로하는 알코올 중독자들도 많다. 분노와 우울감은 음주의 원인인가? 결과인가?
30일 손진훈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팀의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알코올 사용 장애인들은 음주상태가 아닌 평상시에도 일반인보다 쉽고 많이 분노하고, 유머와 기쁨 등 긍정 정서를 덜 느끼는 것으로 드러났다. 알코올 사용 장애인은 정서를 처리하는 기능이 정상인과 다른, 말하자면 ‘분노형’ 뇌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연구팀은 우선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발간하는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편람’에 따라 알코올 사용 장애인에 해당하는 대학생 11명과 정상인(대조군) 7명을 선별했다. DSM-IV 진단 기준은 음주로 인한 문제의 정도에 따라 알코올 사용 장애를 알코올 남용과 알코올 의존으로 분류하고 있다. 실험에 참여한 알코올 사용 장애인들은 한 달에 평균 4~10회 이상, 한번에 소주나 양주로 8잔 안팎의 술을 마시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이 가운데 4명은 알코올 남용을 넘어 알코올 의존자로 분류됐다.
연구팀은 이어 이들에게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에 들어간 상태에서 분노를 자아내는 1분30초짜리 동영상을 보도록 했다. 동영상은 사전에 152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해 사람들이 가장 분노를 잘 느끼는 화면으로 ‘버스에 올라탄 승객이 다짜고짜 버스기사를 폭행하는 장면’을 뽑았다. 실험 대상자들은 또 동영상을 보고 난 뒤 느끼는 분노의 정도를 7점 척도로 표시하도록 지시받았다.
연구 결과 알코올 사용 장애인 집단은 분노 감정을 5.27로 표시해 정상인(4.57)에 비해 더 많이 분노를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두 집단이 분노를 경험하는 동안의 차이는 특히 뇌의 fMRI 결과에서 뚜렷해졌다. 알코올 사용 장애 집단에서는 기존 연구에서 분노와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고된 ‘전측 대상회’(anterior cingulate gyrus) 부분이 정상인보다 훨씬 더 활성화됐다. “이는 알코올 사용 장애인들이 분노를 처리하는 뇌 기능이 정상인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고 손 교수는 말했다. 연구팀의 논문은 6월10~14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는 ‘휴먼 브레인 매핑’(HBM) 국제학술대회에서 박미숙씨(박사과정)를 제1저자로 발표된다.
연구팀의 또다른 연구에서는 알코올 사용 장애인들이 기쁨이나 유머 등 긍정적 정서에 대한 뇌 기능이 정상인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분노 연구와 마찬가지로 실험 참가자들은 드라마 〈세친구〉와 영화 〈허니〉의 일부 동영상을 보면서 뇌 영상을 찍고, 느낌을 7점 척도로 나타냈다. 정상인 집단은 기쁨 정서를 4.3점으로 표시한 데 비해 알코올 사용 장애 집단은 3.5점에 불과했다. 특히 뇌 fMRI를 이용한 뇌 기능 관찰에서 알코올 사용 장애 집단은 정상인 집단에 비해 ‘등쪽 외측 전전두피질’(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 부분이 덜 활성화됐다. 선행 연구에서 긍정 정서와 관련이 있는 곳으로 보고된 부위다.
손 교수는 “이번 연구는 알코올 사용 장애인의 긍정적 정서(기쁨·유머)나 부정적 정서(분노) 처리가 정상인과 다르다는 것을 뇌 기능 연구를 통해 규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또 국제학술지 〈알코올과 알코올중독〉(Alcohol and Alcoholism) 7월호에 알코올 사용 장애인들이 주스와 같은 음료수 자극을 보는 동안에도 정상인에 비해 술에 대한 갈망이 크다는 내용의 논문을 싣는다. 이들 연구는 한국과학재단의 뇌인지과학연구사업 연구비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